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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야기

[인터뷰] 엄상익 변호사 “기부가 아니라, 마음의 자유를 얻는 거죠.”

  고시공부를 위해 산 속 암자에 들었던 한 청년이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곳 암자에서 사법고시 합격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크고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작고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읽은 책들과, 스치듯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출세라는 작은 성공을 떨쳐내고 세상을 바르고 옳게 살아가겠다는 큰 목표를 향해 가는 삶의 자세였다.  
월요일 오전 엄상익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주말 내내 내리던 비가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건물 20층에 위치한 엄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낮은 비구름에 휩싸인 도시풍경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엄상익 변호사는 지난 5월 아름다운가게의 고문변호사로 위촉됐다. 아름다운가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법률관련 문제들에 대한 자문을 맡아 활동하게 됐다. 초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으니 아름다운가게도 법률에 대한 지식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엄 변호사는 아름다운가게가 보다 원활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직접 고문변호사 역할을 자청했다.

그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지식과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슬기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용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운가게뿐 아니라,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법률자문도 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으면, 결과적으로 아름다운가게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엄상익 변호사와 아름다운가게의 인연은 아주 각별하다. 그는 아름다운가게 1호점인 안국점의 기증자이다.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8년 전, 그의 기부를 통해 아름다운가게의 ‘나눔과 순환’ 운동이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엄 변호사는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지만, 그건 결단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기부를 함으로써, 내가 세상에 뭔가 내놓을 것이 있으니 좋은 일이고, 오히려 내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느낌이라서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느낌이 참 좋았단다. 그가 말하는 기부란, 그래서 ‘축복’이라는 단어와 겹쳐진다. 엄 변호사는 아름다운가게가 8년 만에 튼튼하게 잘 성장하게 된 일이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조직이 커지고 하는 일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아쉬운 부분도 나타나죠. 가게를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노력과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조직의 일과 그 안의 개인의 일을 따로 생각하면 조직만 남고 사람은 없어요. 따뜻하고 촉촉하게, 그렇게 살아있는 아름다운가게를 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언제나 일보다 사람, 조직보다 사람, 사람을 위한 세상을 바란다.
 
 
엄상익 변호사는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작가다. 이미 여러 권의 에세이와 두 권의 소설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언론을 통해 칼럼도 연재해왔다. 글을 쓰는 변호사는 세상에 많지만, 엄 변호사처럼 집필에 왕성한 열정을 쏟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욱 특별하다.
 
 
“어릴 적부터 책을 참 좋아했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가 되는 길을 택했어요. 꿈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고시에 도전했어요. 하지만 워낙 책을 좋아하니까, 고시준비를 하면서도 책 보는 일만큼은 포기하기 힘들더군요. 암자에 올라서 고시 준비를 할 때에도 법전만 읽은 건 아니에요. 늘 곁에 소설책이 있었죠. 뭐, 그래서 여러 차례 낙방을 했는지도 모르지만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듣고 겪은 일들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 속으로 녹아든다. 작가의 체험이 작품의 모태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다. 그늘진 곳의 이야기들, 감추어지기 쉬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알리는 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이다. 청송교도소로 접견을 갔던 그는 복역 중인 한 죄수가 교도관의 폭행에 사망했는데도 심장마비로 꾸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갔지만 모두가 그를 외면했다. 괜한 일로 시끄럽게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힘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라도 세상에 이 일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앞서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는 순간 어쩌면 이런 일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용기는 그 생각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이후에 벌어지는 수많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 사건은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1호 사건으로 지정돼 진실이 밝혀졌다. 바로 ‘청송교도소 박영두 씨 타살사건’이다. 이후로도 그가 쓰는 작품들은 그가 변호사로서 접하게 되는 많은 사건과 가려진 진실을 향하고 있다.


30여년 전, 고시에 합격하고 막 변호사가 되었을 때, 그는 아주 특별한 감사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저에게 재능과 기회를 주시고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하시니, 세상의 힘든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우며 일생을 살아가야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