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야기

8_[뷰.펠 2기] 유정호 뷰티풀펠로우

 
 

'마당이 있어야 춤을 추지'

그가 광고공모전에서 입상했던 광고의 카피다. 인재채용에 관한 광고였다.
그런데 그 카피의 내용이 그가 하려는 사업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고학력 장애인의 취업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느껴진다. 마당이 있어야 고학력 장애인들도 일할 수 있다. 그는 그 마당을 만들어 주기위해 노력한다. 그 마당에서 춤 출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뷰티풀펠로우가 되고 어떠셨나요?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치열한 심사 과정과 경쟁률을 뚫고 당선이 돼서 그런지 떨어진 분들의 몫까지 짊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특히나 마지막 4차 합숙심사때 함께 했던 나머지 11분들은 누가 펠로우가 되도 손색이 없던 분들이었어요. 누군가가 날 계속 주목하고 있을 것 같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길가다 껌도 못뱉을 것 같아요.


요즘 여러 곳에서 인터뷰 기사도 나오고 꽤 바빠지신 것 같은데..
경향신문에도 나오고 제가 SGS 출신인데 그곳에서도 뷰티풀펠로우가 된 것을 기사로 실어주셨어요. 조금 더 성공하고 싶어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나요?
장애인 당사자인 제가 얘기하면 조금 더 장애인들에게 좋지 않겠어요? 비장애인들은 이해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돼서 장애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이나 국회의원 등이 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애가 있으신지 설명 부탁드릴게요.
뇌병변장애 2급입니다. 3살 때 조금 앓고 난후 뇌 일부에 손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고요. 5살 때 처음 걸었고 그때부터 기억이 있어요.


장애 때문에 힘든 점이 많으셨죠?
부모님이 일반학교에 보내셨어요. 당시에 장애인이 일반학교에 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거든요. 그렇지만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고 별 무리 없이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회 밖은 여러 가지 차별이 많습니다. 인식의 차별뿐만 아니라 인프라도 그렇고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환경적 사회적 차별이 많아요. 그래서였는지 유니버셜 디자인이란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모두가 쉽게 누릴 수 있는 그런 디자인요.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조금만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쉽게 얘기하면 제가 지금 내고 있는 점자책이 그림도 있고 점자도 있고 글씨도 있어요.
시각장애인들도 읽을 수 있고 비장애인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그 그림은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또 어떤 것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제 사업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지금 특허 출원 중에 있어요.


기존에도 점자가 있잖아요? 뭐가 다르죠?
그 점자들은 사실상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매우 어려워했어요. 어떤 것들은 있느니만 못했죠. 전 출판업계에 있어서 책이 출간되는 모든 과정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가독성이 좋은 점자책을 유니버셜한 디자인으로 개발하게 됐죠.


그래서 지금 사업을 생각하신 건가요?
장애인들이 요즘 고학력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이 전공과 상관없는 단순근로이기나 단순 부품조립이나 그런 것들입니다. 불합리해요. 장애인 개인에게도 그렇고 국가 전체에도 비효율적이죠. 어떻게 해결해볼까 고민했어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뭔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죠?
말씀드렸다시피 대학까지 전공공부를 하고 나와서 단순근로를 하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전문직 군으로 고용하는 거죠. 물론 다소의 교육이 필요하죠.
제가 가지고 있는 특수점자책 출판사업과 또 특허 출원중인 그 책서비스 그리고 POD사업으로 고학력 장애인들을 취업시킬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사회에 진출한 고학력 장애인들로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완화 시키고 싶고요.


그렇다면 혹시 그런 차별대우를 받은 개인적 경험이 있는 건가요?
그냥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한의학과에 지원했어요. 점수로 합격은 했는데 당시에는 면접시험이 있었죠. 면접관이 저의 장애를 보고 장애가 있어서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탈락했죠. 당시에는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하셨는데… 그럼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그 후의 얘기도 조금 해주세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조용한 편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에서 학생운동도 하고 여러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봐야죠. 제가 글쓰기 하는 것에 조금 소질이 있던 것 같아요. 대자보 많이 썼어요. 하하


대학교를 졸업하시고는 바로 취업을 하신건가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장애인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출하기 수월한 곳이 공무원 조직이에요.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을 했고 당시 도청 어디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면접관이 무슨 과장이었어요. 제 장애를 보고는 장애인에게 일을 맡기면 민원 처리도 못하고 한사람 몫의 일을 온전히 맡길 수가 없다. 그래서 저를 채용할 수 없겠다고 말하더군요.


정말 화가 나섰겠는데요. 기분이 어떠셨어요?
정말 이때는 너무 화가 났어요. 사회문제에 대해서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하지만 막막했어요. 공무원도 안 되면 내가 뭐로 먹고 살 수 있을까하고요. 그러던 중 제가 뭔가 잘하는 것을 찾아냈어요. 저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주제가 주어지면 굉장히 빠른 시간에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사실을 알던 선배가 저에게 광고공모전에 나가보자 제안해서 출전하게 됐죠. 그리고 수상하게 되었어요.


당시 제출한 내용이 뭐였나요?
"마당이 있어야 춤을 추지!"


어떤 주제의 광고였죠?
채용에 대한 광고였어요. 그 카피로 광고회사도 들어가고 지금까지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광고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여러 가지 광고기획업무였어요. 기획에 대해 발표도 하고 알려야 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았었어요. 발표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어요. 당시에 출판관련 업무들도 많이 배웠고요. 지금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한 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는 비록 신체적 장애가 있으나 그만이 가진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는 최소한 삶의 미션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 보였다.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그의 장애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방해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