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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콘텐츠공모전 수기부문 최우수상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 / 전진

 
소록도

  2009년 스무 살,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민과 동시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어딜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었다. 친구를 통해 한센병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대해 알게 되고, 일제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탄의 세월을 견뎌온 한센인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소록도’였다.

  제대 후 1년, 이제는 소록도에 가서 더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르신들의 외모 때문에 그들을 판단하고 그들을 진정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소록도에서 17일을 보내는데 외면에 비친 그들의 모습 때문에 나의 내면이 그들을 향해 마음을 열지 못할까 염려되어 기도로써 준비하였다.



소록도 생활

  4시 45분, 알람이 울리면 짙은 어둠 속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기분 좋게 걷다보면 병실에 도착하고, 어르신들의 아침식사와 함께 소록도의 아침은 시작된다. 하루 동안 세 번의 식사수발, 기저귀 갈아드리기, 손톱 깎기, 안마, 물리치료실 데려다 드리기, 목욕봉사, 산책 등의 봉사를 하게 된다. 

  한번은 어르신과 소록도 입구 쪽에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도로를 걷고 있는데 예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곳은 예전에 한센병 환자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한 달에 한번 면회하던 곳이라 하셨다. 혹여 바람을 타고 나균이 전염될까 싶어 부모들은 바람을 안고,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목이 매여 바라만 보며 눈물로 면회하던 곳이라 하셨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고 하셨다.

  소록도에서 종종 어르신들 안에 있는 세월과 한이 서려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소록도는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과거의 아픔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오늘 속에서 적어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소록도에서 일주일이 지날 무렵, 어르신들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도, 어르신들과의 관계에도 점점 익숙해졌다. '익숙' 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익숙함과 동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먼저 어르신들의 차트에 적혀있는 병명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Dementia(치매), HTN(고혈압), Hemiplegia(편측마비) 등의 의학전문용어들이지만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어르신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소O 어르신은 신경성 대장질환이 있으셔서 대변이 묽었구나 싶기도 하고, 만O 어르신은 만성폐쇄질환(기관지질환, 증상: 가슴이 답답함) 때문에 답답하셔서 소리를 지르셨던 거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완O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계시기에 염분과 수분섭취에 특히 유의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가 조절하는데 신경 써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어르신들에 대해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거리도 더욱 가까워지는 듯했다.



선물

  끝을 생각하고 했던 시작이었기에 어르신들께 어떤 선물을 남기고 갈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편지'였다. 다음 봉사자들에게 내가 어르신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만큼 알 수 있었던 것을 전해주며 어르신들을 부탁하는 편지. 예를 들면 석○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천식이 있으셔서 소금물을 챙겨드리면 좋은데, 같이 봉사하는 개인봉사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여 어르신들께 필요한 것들을 모아 일종의 메뉴얼을 만들게 되었다. 왼손잡이신지 오른손잡이신지부터 시작하여 어떤 걸 좋아하시는 지 어떤 부분을 챙겨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헤어짐, 그리고 감사

  소록도에서의 17일,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포옹하며 눈물로 인사를 드렸다. 당신들만의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인사해주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나온 말은 "그동안 감사 했습니다"였다. 그렇다, 내가 어르신들께 무언가를 해드린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나는 봉사를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소록도에서의 17일은 어르신들, 간호사분들, 봉사자분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이 지나갔다. 매일 새벽길을 비춰주던 새벽별빛, 나를 기다려주시는 어르신들, 옆에서 함께 기저귀 갈던 친구들까지 모두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했던 '봉사' 라는 것은 결코 대단하고 숭고한 행위의 집합체가 아니고, 우리네 삶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다시 찾은 소록도, 그리고 마음의 소록도

   2015년 8월 20일, 다시 찾은 소록도. 1년 전 나를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들, 처음 보는 듯 인사 건네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자리를 비우신 분들도 몇 분 계셨다. 1년 만에 찾은 소록도 봉사를 통해 느낀 것은 지난 번 봉사 때 함께 하던 봉사자님께서 말씀해주신 ‘마음의 소록도’에 대한 것이었다. 이 곳 소록도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 때문에 ‘소록도에서의 시간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부터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바꿔나가자‘는 것이 그 분이 말하던 ‘마음의 소록도’였다. 소록도에서 느낀 마음을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 눈길을 돌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 말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고민 끝에 노숙자 무료급식 봉사를 시작하였다. 한 끼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밥 한공기가 그들의 삶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서 있는 곳, 이 마음의 소록도에서 조그마한 밥 한 공기에 맺혀 있는 작은 마음을 나누는 것을 통해 그 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을 느낀다.
 

 
위 내용은 아름다운가게가 2015년 9월에 진행한 자원활동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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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활동 콘텐츠 공모전 수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