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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물건을 되살리는 일 ‘기부 문화의 폐기 사태’를 취재한 후에

아래 글은 2019년 5월 23일 발간된 아름다운가게 2018 참여와 나눔 보고서 중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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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참여와 나눔 보고서

진짜 물건을 되살리는 일

'기부 문화의 폐기 사태’를 취재한 후에

한국일보 멀티미디어부 기자 박서강

지난해 11월 모바일 메신저로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어린이집 원아들이 정성스럽게 쓴 그림 편지가 기부 물품 상자에 빼곡히 붙어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을 제보한 아름다운가게 홍보팀 간사는 “기부자들이 보내 온 손편지를 모으면 미담 기사 소재로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름다운가게 본부를 찾았다. 간사는 내게 두툼한 파일북 4권을 건넸다. 거기엔 기부자들의 손편지 백여 통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무심코 파일북을 뒤적이는데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편지는 “정장은 드라이했고 다른 옷들은 새로 다 빨았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돼 다림질은 못했습니다”로 시작해 “물품들이 너무 빈약해서… ㅠㅠ”라는 미안함으로 끝을 맺었다. 또다른 편지엔 “배송비만 써 없애는 게 아닌지 싶어 배송비 4,000원 넣어 보냅니다”라는 사연과 함께 천 원짜리 지폐 4장이 동봉돼 있었다.
지인에게 선물하듯 정성껏 준비한 물건들, 그도 모자라 배송 비용까지 챙겨 보내는 마음, 기부란 이런 것이었다. 파일북에 정리된 다른 편지들에서도 이 같은 배려심이 철철 넘쳤다. 최근 사례가 없는지 묻자 조 간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즘엔 좀처럼 이런 손편지를 보기가 어려워요.”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예전에 비해 물품 기부량도 꽤 많이 늘었을 텐데 왜?

도저히 쓸 수 없어 곧바로 폐기 처리되는 기부 물품이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버리느니 기부’하는 이들이 이처럼 많은 현실에서 진심 어린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부의 양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기부 문화의 정착이 더 시급하다”라는 말은 마치 데스크의 취재 지시처럼 들렸다. 곧바로 수거된 물품이 모이는 서울그물코센터를 찾아가 보기로 하고 취재 일정을 잡았다. 미담 제보로 시작된 취재는 그렇게 고발성 기사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기부 물품 폐기 실태는 참담했다. 겉감이 삭다 못해 가루처럼 부서지는 재킷부터 쳐다보기 조차 민망한 입던 속옷, 찢어진 전기 장판 등등. 그뿐만이 아니다. 고장 나거나 심하게 훼손돼 사용할 수 없는 전자제품과 주방용품도 순식간에 쌓여 폐기 트럭에 실려나갔다. 비록 헐값이라도 폐기 처분으로 나온 수익금 또한 나눔에 보태지겠지만 운반과 분류 과정에 드는 노력과 시간, 비용을 따져볼 때 불필요한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보도를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폐기 수준의 물건을 거리낌없이 내놓는 ‘무개념 기부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비뚤어진 우리 기부 문화의 현실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댓글 창에서 넘쳐났다. 다수의 매체가 이 같은 실태를 뒤이어 다루면서 ‘폐기 이슈’는 연말 끝자락까지 이어졌다.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나 현상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기자로서의 역할과는 별개로 기사로 인해 그 동안 이어져 온 기부 활동마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아름다운가게 2016~2018 기증 데이터

그리고 해를 넘겨 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아쉬움과 궁금증. 10여년 전 아버지의 유품을, 남편이 입던 정장을 세탁해 기부하면서 다림질을 못해 미안해하던 배려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고민하다 문득 ‘사랑의 온도탑’을 떠올렸다. 기부금 액수가 쌓일수록 빨간색 수은주가 올라가는 온도계 모양의 대형 탑. 탑이 상징하는 나눔의 취지와 실천 효과는 분명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사랑의 온도와 모금 액수는 비례하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그물코센터 한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폐기 물품이 대신 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기부의 의미를 양적으로 판단하고 액수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어떻게 도왔는지 보다 얼마를 기부했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 그 속에서 우리 기부 문화의 수준은 뒤축이 다 닳아버린 구두처럼 참담해져 왔다.

생각을 넓혀보면 기부 에티켓의 실종으로 나타난 배려의 소멸 사태는 ‘갑질’의 양산과도 관련이 깊다. 배려와 나눔의 대상인 약자마저 내가 살기 위해 딛고 올라서야 할 발판으로 인식하는 순간 갑질은 시작된다. 기부를 가장한 폐기물 투기 역시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무시한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인 셈이다.
다만, 그런 물품을 기부했다고 해서 애초의 ‘선의’까지 폐기 대상으로 모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기부 에티켓이 곧 나눔의 마음가짐이라면 희미한 선의나마 얼마든지 그 씨앗이 될 수 있을 테니. 무엇을 얼마나 나누느냐 보다 어떻게 나누느냐를 더 중히 여기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절실하다. 기부된 물품이 곧바로 버려지는 안타까운 광경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나도 고민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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