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야기

2014 나눔보따리 스케치 #3_나눔보따리, 나눔 현장 방문기

 

 



 

종로구,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선 길 언덕 너머엔 이렇게 판잣집 하나가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지난 나눔보따리 행사 시, 수많은 보따리 중 하나가 배달된 집입니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뿜어 나오는 매서운 날씨,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서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흔한 이웃사촌 하나 없습니다. ‘길없음’이라는 빨간 글씨를 치우고 나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행복 가득한 집이 될 수 있을까요?





이날의 배달천사, 낯익은 분들이죠? 네, 맞습니다. 바로 MBC 아나운서 분들인데요. 평소 아름다운가게와 인연이 깊은 아나운서협회 측에서 이 날 행사 진행은 물론, 배달천사까지 해주셨죠. MBC 신동진, 이성배, 이 진, 차예린 아나운서, 이렇게 네 분이 직접 배달천사로 나서주셨답니다.

작년 2013년 10월 17일부터 12월 20일까지 약 2개월간 진행되었던 ‘기증보따리’ 캠페인 기억하시죠? 그 때 마련된 금액으로, 홀몸어르신 5,000여 가구에 배달해드릴 나눔보따리가 탄생했구요. 사진 속 나눔보따리가 바로 그 중 하나랍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설 수 없는 작은 폭의 통로를 따라가면, 이렇게 곧바로 방문과 연결되어있는 구조였는데요. 이 집에는 모녀 두 분이 살고 계십니다. 올해 아흔 여섯의 고령의 어머니와 그의 따님. 사진 속, 자주색 조끼를 입고 계신 분이 바로 이옥형(96) 할머님이십니다.

아흔 여섯이라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할머님은 참 정정하셨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빗겨갈 수 없는 걸까요. 오래 전 받은 인공관절 수술로 인해서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였습니다. 구부정한 허리, 불편한 다리, 편안히 앉아계셨으면 했지만 할머님은 꽤 오랜 시간동안 한참을 서 계셨습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와줘서 고마워.”
할머님은 주로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따님은 한 푼이라도 벌어보고자, 식당 일을 하러 외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 마저도 매일 있는 일자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 잘 들리진 않지만 당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싶으셨던 걸까요? 할머님은 쉽사리 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한참을 가까이서 얼굴을 들여다보셨습니다.

다섯 명이 둘러앉으니 여유 공간 없이 꽉 차는 방 안. 모두 들어와 앉았는데도 할머님은 계속해서 두리번두리번, 한참을 서성이셨는데요. 알고 보니, 방이 비좁아 잠시 밖에 나가 서있던 활동천사님이 마음 쓰여 계속해서 살펴보고 계셨던 겁니다. 할머님은 집에 찾아온 모든 사람이 방에 들어온 걸 확인한 후에야 그제야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평생 먹어도 남겠네”
저희가 준비한 나눔보따리를 풀어본 시간. 보따리 안에 들어있던 물품 하나하나를 꺼내며 어떻게 쓰는 건지 확인하시고 매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주셨던 할머님.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족히 수십 번은 넘게 하셨습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심이 물씬 느껴졌는데요. 뭐가 그리 고마우셨던 걸까요.

사실 매년, 어르신들께 나눔보따리를 드리면서 한편으론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더 큰 나눔을 드리지 못해서, 더 자주 드리지 못해서. 그게 혹시나 마음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비춰지진 않을까, 우려를 떨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히도 물품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사용처를 저희에게 물어 확인하시며 무척 즐거워하셨답니다.

생활 전선에서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은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겠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르신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함께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요?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5.1%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하는데요. OECD 평균보다 무려 3.3배나 많은 수치라고 합니다. 또한 70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84.4명으로, 이 역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 더 이상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전부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남아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독한 가난보다도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요즘 많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예능 프로 ‘심장이 뛴다’, 보신 적 있으신가요? ‘너무 외로워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는 한 할머니의 사연. 사람만 왔다가도 반갑고 좋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서는 고독이 사무쳐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리워, 누군가의 음성이 그리워, 어디론가 무작정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 아직 젊은 우리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일 테죠.



“지금부터 딱 100년만 건강하게 살아, 알았지?”




나눔보따리 박스 위에 수북이 있는 과일과 초코파이, 방 안 깊숙이 있던 할머님 간식인데요. 손님들 대접해야 한다며 저렇게나 많은 양을 꺼내 준비해주셨답니다. 마주한 사람들의 입속에 감 한 쪽이 전부 들어간 것을 꼭 확인하셨던 할머님.

혹시 이런 덕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딱 100년씩만 건강하게 살아.”

모두의 손을 한 번씩 꼭 잡아주시며 건넨 인사 말씀. 작고 주름진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할머님의 사랑과 나눔, 초코파이"
아나운서님들뿐만 아니라 제 가방에도 꾹꾹 넣어 챙겨주시던 할머님의 초코파이.
행여나 할머님의 간식을 우리가 빼앗는 건 아닐까, 계속해서 사양했지만 할머님은 오히려 “늙은이 혼자 이걸 다 어떻게 먹어, 나눠 먹어. 응?”
라고 하시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나씩 나눠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초코파이 받았어?”
“네, 할머님. 저 가방에 잘 챙겨놨어요. 꼭 먹을게요.”
“응응, 그럼 됐어.”

혹시, 지금까지도 ‘나눔’이 내가 당장하기엔 부담스러운 것,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할머님의 초코파이가 많은 깨달음을 준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이 좀 풀리면, 초코파이 사들고 다시 한 번 할머님을 찾아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