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야기

희망을 싣고 : 임광민 씨의 아주 특별한 여행




임광민 씨의  아주 특별한 여행


임광민 씨가 여행을 시작한 날은 공교롭게도 제주에서는 일년에 한두 번 있다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영하를 넘나드는 기온에 바닷바람은 세차게 몰아쳤고, 바람의 결을 따라 눈발이 흩날렸지요. 가족과 함께 처음 나선 제주도 여행이었기에, 예상하지 못한 날씨가 광민 씨의 마음을 조금은 무겁게 했던 것 같습니다. 좀처럼 무엇인가 원망하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광민 씨인데도, 이날은 날씨가 야속하게 느껴져서 기운 마저 시들해졌으니까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광민 씨는 날씨로 인해 애초에 계획했던 여행코스를 변경해야 하는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오른 여행길


임광민 씨는 올해 26살이 된 잘 생긴 청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나이이지만, 광민 씨는 보통의 청년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광민 씨가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늘 휠체어에 의지하고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8년 전. 광민 씨는 철봉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새벽 훈련시간에 선배로부터 무리한 기술을 요구받다가 그만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머리부터 충격을 받아 전신마비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3년간의 병원생활, 그리고 이어진 지난한 재활을 통해서 지금은 두 팔을 부자연스럽게나마 움직이게 되었지만, 그 역시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무척 다릅니다. 아직은 가족의 도움 없이 식사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어릴 적 광민 씨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체조코치의 눈에 띄어 처음 기계체조를 시작한 뒤로 광민 씨는 늘 촉망받는 유망주였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전국체전 금메달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런 광민 씨의 재능을 아꼈지만,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꼭 베이징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고야 말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런 광민 씨의 꿈을 앗아간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그렇게나 짧은 찰라의 순간이 삶 전체를 뒤바꾸게 될 것이라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질시해서 무리한 훈련을 요구한 선배들, 슬픔과 충격 속에서 마음을 추스를 수조차 없는 자신을 감싸주지 않는 선생님들, 절망 속에서 고통받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광민 씨는 어쩌면 세상을 향한 마음을 꽁꽁 닫아버려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보며 다시한번 새로운 꿈을 꾸어보는 광민씨


광민 씨의 제주도 여행 소식을 접한 것은 아름다운가게 방학점 류정은 간사님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름다운가게 방학점과 미아점, 그리고 도봉구 지역 5개 지역단체가 함을 합해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었지요.
지역 단체들이 힘을 모아 2011년 한 해 동안 바자회를 개최하고, 그 수익금으로 20대 젊은이들이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상처받는 세상, 젊은이들이 꿈을 접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는 사회에서, 다시금 세상을 향한 관심을 갖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좋은 여행을 제안하는 지역중심의 재미난 프로젝트입니다.

그 첫 대상자로 선발된 다섯 팀 중에서 특히 제 눈길을 잡아 끈 것이 바로 임광민 씨였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스물여섯 이 청년의 마음, 돌이켜보야 할 과거, 그리고 그가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경험들이 저로서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의 삶을 응원하고, 그가 마주하게 될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여행길 동무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한겨레 김지훈 기자에게 소개했고, 신문매체를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을 알리고 응원에 동참하게 하자는 차원에서 김지훈 기자도 제주도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여행길을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았던 것도 자주 발목을 잡았지만,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광민 씨에게 제주도 여행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죠. 애초 방문하려던 곳 중에서 몇몇 곳은 휠체어가 이동하기 어려워 포기해야 했습니다. 식당에서는 휠체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적당한 테이블이 없어서 들어가지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주도에서 근무하시는 송창윤 간사님의 도움으로 맛도 일품이고 시설도 잘 되어 있어 편하게 식사가 가능한 식당과, 꼭 가보면 좋을 여행코스도 소개받게 되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광민 씨는 제주의 푸른 바다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여행 둘째 날부터 구름이 거치면서 눈 앞에 펼쳐진 옥빛 바다와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의 장엄한 풍경,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평온함을 더하는 오름들을 지나며 광민 씨도 조금씩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처럼 꺼내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올레길을 지날 때에는,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비추는 반짝이는 햇살을 오래도록 응시하기도 했습니다. 광민 씨의 눈길은
사뭇 깊고 따뜻해져 있었습니다. 광민 씨는 계단으로 된 전망대나 등대에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바퀴가 움직이기 힘든 모래사장이나 자갈밭도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추위를 이겨내고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제주 동백꽃처럼, 광민 씨의 마음도 천천히 하지만 끝내 환하게 빛나게 될 것이라고, 저는 한 걸음 뒤에 서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우리는 제주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우리는 서울에 가서 다시 만나 여행 뒷풀이를 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웃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광민 씨의 뒷모습이 씩씩해보여서 참 좋았습니다.



 

홍보팀 김광민 간사와 함께


여행은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것. 그리고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고 그 위에 새로운 내일을 그려보는 것. 물론 광민 씨가 이번 여행을 통해 거대한 희망을 배웠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하나 둘 만들어가면서,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고 실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광민 씨는 말합니다. "아직은 특별한 삶의 목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면 조금씩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한겨례 _ 가족애로 상처 딛고…휠체어 타고 ‘희망여행’  

글 / 홍보캠페인팀 김광민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