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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숫자로 매김 될 수 없는 인권

숫자로 매김 될 수 없는 인권을 지키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안녕하세요? 전남 광주 지역에서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의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입니다. 저는 2019년 뷰티풀펠로우 9기로 선정되었습니다. 대표, 펠로우, 변호사… 남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들에는 저의 다양한 역할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동행의 변호사로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법의 사각지대의 경계를 허무는 일

저희는 지난 6월 1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 제2,3호 위헌법률심판사건’ 공개변론을 진행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원래 서면심리만을 진행하는데 공개변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주목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 황신애 시인(가운데)과 대리인단

 

본 공개변론 건의 당사자는 전남 광주에 살고 계신, 중증 근육병을 앓고 있는 50대의 여성으로, 두 차례 시집을 낸 시인 황신애님입니다. 40대에 갑자기 찾아온 근육병(다발성 경화증)으로 온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아름다운 분이지요. 황신애님은 국가에 신청 할 수 있는 지원제도 중 장애인활동지원제도(하루 최대 13-14시간, 사회생활까지 모두 지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쩌다 보니 노인장기요양서비스(하루 4시간, 집안일만 지원, 일요일 제외)를 먼저 신청하시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로 변경신청을 했더니 위 법률에서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신청자격 자체가 박탈된다며 거부 당한 것이지요. 그래서 동행에서는 그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장애인활동지원법 제5조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구했던 것입니다.

 

2020년 6월 11일, 그 날

황신애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초봄이었어요.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4년이 지나는 동안 몸은 더욱 약해지셔서 대리인으로서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다행히 6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황신애님이 직접 최후 진술을 하실 수 있었어요. (아래 그림은 졸작이나마 황신애님의 최후변론 모습을 급하게 스케치해본 것입니다.)

황신애님의 목소리가 재판정에 낮게 울려퍼지는 그 순간…. 대리인단도 울고 몇몇 재판관님들도 눈물을 훔치셨어요. 아래는 황신애님의 최후 진술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황신애입니다. 3년 만에 서울을 왔습니다. 그때는 문학상 받으러 왔었고 이번엔 헌법재판소에 왔습니다. 재판은 11일 오늘이지만 저는 어제 왔다가 오늘 일이 끝나면 내일 내려갈 예정입니다. 당일치기 여행은 제 몸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0년 4월 중순, 이소아 변호사가 처음 공개변론이 있다는 연락을 준 날부터 계속 컨디션 조절을 해왔습니다. 제 병은 추위보다 더위에 더욱 무력해집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오는 것은 친구와 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매일 다가올 일정을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친구와 딸은, 물먹은 소금포대 같은, 통나무 같은 내 몸뚱이와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 재판이 끝나면 서울에 사는 그리운 친구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친구에게는 오늘 컨디션을 봐야한다고 말해 뒀습니다. 제 몸이 어떻게 될지 저도 알 수 없으니까요. 이렇듯, 간절한 약속도 늘 제 몸 상태 다음으로 미룹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만나려고 합니다. 서울에 올 수 있는 것도 귀한 일이고, 몸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리움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저는 2005년 다발성경화증 확진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의 재발과 진행으로 중증장애가 왔습니다. 한동안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만 생각하다가 2014년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모로(옆으로) 누워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로 눕는 것도 안되기에 책읽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왼손의 손가락들마저 힘들어져 스케치도 어렵게 됐습니다. 하루 네 시간 요양보호사가 오는 시간 말고는 거의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요양시설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서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요양보호사 언니가 파스를 붙이거나 약을 먹는 것을 보면 제가 물귀신처럼 생각이 듭니다.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에게도 미안합니다.

활동보조가 되면 제 주위 사람들에게 덜 미안할 것입니다. 짐을 덜어주고 싶습니다. 누워있을 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도 메모할 수 있고 한글 문서도 작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에서 영광 해안도로까지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한데,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석양을 보러 갈 것입니다.

저는 두 달 동안 매일 오늘을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와 같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들이 시정된 법으로 덜 힘들 것 같아서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첫 번째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오늘보다 다른 내일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 내일과 함께 새로운 오늘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2020. 06. 11

*황신애님의 이야기와 최후 진술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동행이 '함께' 걸어가는 길

장애인차별철폐추진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이렇게 ‘구체적인 역사’를 가진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합니다. 시간도 기본 6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게다가 그 결과가 패소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동행의 변호사들은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싸움을 계속합니다. 2019년 뷰티풀펠로우에 지원하여 선정 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행의 가치와 가능성을 증명해내야 하는 데 있어 한 사람에 대한 법률지원의 결과를 사건 수, 당사자 수, 승소율 같은 ‘숫자’로 동행의 활동을 설명해내기가, 그 의미를 풀어나가기가 참 어려웠거든요.

동행의 궁극적인 지향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끈질기게 ‘법의 언어로 전달’하고 그 곁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활동의 결과로 어느 어떤 날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저희의 몫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인권현장에서는 황신애님과 같은 당사자, 그리고 수많은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그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이런 비영리인권활동을 하는 저를 뷰티풀펠로우로 선정한 것은 그와 같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변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있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말로 완성되지 못한 그들의 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달하는 활동들을 끈질기고 멋지고 신나게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소식을 보시는 여러분도 언제 결론이 날 지 모르는 이 길고 긴 소송과 결과에 잠깐이나마 관심 가져주시고, 기운 모아주시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홈페이지

이소아 '뷰티풀펠로우 9기' 인터뷰

 

글ㅣ ​뷰티풀펠로우 9기 이소아 펠로우
편집ㅣ 아름다운가게 사회적기업센터 백지은 간사